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까뮈는 말했다.
“짐승들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아인쉬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신비로움이다. …… 그것은 모든 진실한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다. 더 이상 경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위대한 작가였고 또 한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였던 이 두 사람 모두 인간다움 또는 인간다운 삶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손꼽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경이 또는 경탄의 대상이 무엇인지 그들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게 자연이라는 것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때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똑같은 자연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발 딛고 서있는 입장에 따라서 그들은 자연의 어떤 면에 특히 주목할 것이다. 까뮈와 같은 예술가라면 자연의 아름다움, 즉 미적인 면에 더욱 주목할 것이고, 아인쉬타인처럼 과학자라면 자연에 내재한 법칙, 즉 진리의 발견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위대한 예술품의 창작과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대개가 이렇게 해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예술가나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 예술작품이나 과학적 발견과 발명으로 구체화되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과 영혼을 가득 채워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자연 앞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란 모두 합쳐봐야 몇 시간에 불과할 테지만,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감수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영혼과 과학자의 눈을 동시에 가졌던 20세기 최고의 환경주의자 레이첼 카슨이 이 사랑스러운 책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진실이다.
과학자이든 일반인이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삶의 고단함에 쉽게 지치지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일상에서 분노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오솔길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분노와 걱정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활력과 흥분을 되찾을 수 있다.
철새의 이주, 썰물과 밀물의 갈마듦, 새봄을 알리는 작은 꽃봉오리, 이런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더러, 어떤 상징이나 철학의 심오함마저 갖추고 있다.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는 일. 이렇게 되풀이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이 치료받고 되살아난다. (93~94쪽)
레이첼 카슨은 유년 시절의 자연 체험을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경이로운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줄 아는 우리 인간의 타고난 감수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않고 평생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어린 시절에 판가름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겪게 되는 자연 체험은 우리의 인격 및 세계관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장래의 진로까지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녀의 이러한 믿음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을 돌아보건대, 오늘날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기고 또 자연 앞에서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어린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아주 어릴 때부터 TV와 전자오락과 컴퓨터 게임 등 인공 환경과 가상 현실을 더 많이 접하고 자라난 이 시대의 한국 아이들에게 있어, 자연이란 그저 시시하고 재미없고 때로는 불안하고 두려운 낯선 대상임이 틀림없다.
오늘날의 한국 사정보다야 훨씬 나았겠지만, 레이첼 카슨이 정열적으로 집필 작업을 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도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염려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한 자연 체험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고 어렸을 때부터 매혹의 대상이었던 바다를 더욱 가까이 그리고 더욱 자주 접하기 위해서 작가의 꿈마저 접고 해양생물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던 카슨으로서는 그런 현실이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 책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카슨이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한 여성 잡지에 기고한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Helping Your Child to Wonder)’라는 제목의 글을 그녀의 사후에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부모들은 자주 당혹스러워한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추구하고 무척이나 민감하기도 한 어린이의 감수성과 만날 때, 그리고 익숙하지 못한 다양한 생명체들로 가득한 자연 앞에서 말이다. 보통의 부모들은, 도대체 이 복잡한 자연을 조리 있게 이해하거나 설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지레 좌절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도대체 내 아이에게 어떻게 자연에 대해 가르칠 수 있지? 왜 나는 새의 종류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나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린이에게나, 어린이를 인도해야 할 어른에게나,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자연과 관련한 사실들은, 말하자면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씨앗은 나중에 커서 지식과 지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느끼는 이런 저런 감정과 인상은 그 씨앗이 터잡아 자라날 기름진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 시절은 그런 기름진 땅을 준비할 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새로운 것,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과 기대ㆍ공감ㆍ동정ㆍ존경ㆍ사랑……. 이런 감정들이 기름진 땅을 이루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물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추구할 수 있다. 한번 형성된 그러한 기름진 땅은 어린아이의 곁을 평생 떠나지 않는 착한 요정이 될 것이다. (52~53쪽)
이처럼 이 책에는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자연의 세계로 인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레이첼 카슨의 진심 어린 조언들이 들어 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아서 자신의 아이들은 없었지만 조카의 아들인 로저와 함께 메인의 숲과 바다를 거닐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에서 그녀가 들려주고 있는 조언들은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라면 한번 경청할만한 대단히 실제적인 것들이라 하겠다. 아쉬운 것은 그녀의 대표작이 된 『침묵의 봄』을 쓰고 출간하고 또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그녀가 애당초 구상했던 더 많은 글들을 이 책에 추가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철새가 이동하는 가을밤에 로저와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한 다음의 글에서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는 듯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 애잔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아 망원경의 초점을 달에 맞춘다. 물론 인내심을 배워야 한다. 철새의 이동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경로가 아니라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와 함께 달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수준의 배율을 지닌 망원경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공간ㆍ거리ㆍ별ㆍ우주, 이런 것들에 대한 놀라움을 맛보기에 충분하다. 이윽고 달 가까이 날아오는가 싶던 새들은 빠르게 달의 얼굴을 가로질러 저 멀리 사라져간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와서, 빛 가운데 잠시 머물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주의 외로운 여행자들. 비록 길은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런 여행자들이리라. (85쪽)
서정적이면서도 간혹 간절함이 담겨 있는 이러한 시적인 산문들이야말로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기보다는 자연에 극도로 민감하고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레이첼 카슨의 면모를 훨씬 더 많이 부각시켜준다. 레이첼 카슨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침묵의 봄』 말고도 이 작은 책도 함께 읽어 볼 일이다. 날카로운 과학자의 눈을 가졌으면서도 그 내면에는 시인의 감성을 지닌 그녀의 본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회복시켜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경이로움에 힘입어 우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도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리라.
1962년 침묵의 봄 을 통해 살충제 남용의 위험을 널리 알렸던 환경주의자 레이첼 카슨의 자연 예찬 에세이. 어린 조카 로저와 거닐던 밤바다, 고즈넉한 숲길, 달빛과 폭풍우 등 이번 글에서도 역시, 시적인 산문과 과학적 지식이 독특하게 결합된 그녀만의 아름다운 문장과 만날 수 있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밤을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카슨은 메인 주의 바위 해안 못지 않게 밤의 고요함과 신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바닷가와 밤이야말로 카슨이 삶의 가장 깊은 신비를 명상하는 장소와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카슨이 권하는 모험의 상당 부분이 밤에 홀로 나서는 모험들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나 친한 친구와 함께라면 효과는 두 배가 된다. 그 효과란 내적인 치유, 그리고 인간 내면에 대한 새롭고도 깊은 이해와 통찰이다.
카슨의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티는 어머니와 함께 메인 주로 카슨을 방문했다. 그 여름에 카슨과 로저는 카슨의 집 주변 숲과 바닷가를 함께 거닐었다. 이 흥미진진한 모험에서 로저는 어린이 특유의 상상력을 보여주면서 카슨과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 책은 바로 로저와 함께 했던 시간,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도로시 프리맨과 함께 했던 시간, 또 카슨이 홀로 했던 시간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나이 어린 조카 로저와 함께 해안가나 울창한 숲속을 따라 산책하고, 야생동물이나 이름 모르는 식물을 관찰하고, 달빛과 폭풍우를 감상하고, 덤불 속 벌레의 ‘생생한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조카에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흥분하고, 함께 웃었을 뿐이다.
그녀는 어린이 앞의 세상은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다우며,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하지만 어른들은 이런 순수한 본능이 흐려져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상실해버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자연에 대한 타고난 경이의 감정을 지키려면, 그러한 감정을 함께 나눌 어른이 필요하고, 어른에게는 그런 감정을 되찾게 해주는 어린이가 필요한 셈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신비, 경이, 기쁨, 흥분을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찾고, 함께 나누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밤바다
여름 숲
너와 나, 우리
마법의 양탄자
착한 요정
또 하나의 눈
아주 작은 세상
생명의 소리, 생명의 맥박
가을 교향곡
영원한 치유
어떤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