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다. 혹자는 젊은이들의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불황은 사실이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시련에 대해 기성세대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옆자리 아이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우린 성장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대학입학 이후로 모든 것을 미루는 데 익숙해질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사회가 바라는 대로 행하다보니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셈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에 입사한 이들이 서른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도 여전히 부럽다. 그들은 분명 높은 임금을 받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나은 복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 노동의 강도가 상상 이상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40대 중반만 되면 직업의 안정성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하였지만 아직은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 그러한 형태의 삶이 덜 불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행복일 거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들여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자신이 마치 일하는 기계로 전락한 것만 같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괴로워한다면 차라리 직장을 관두는 편이 나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인생도 있다. 바로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모두가 날 배신해도 부모만큼은 내 편이라고 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비정하게 버리는 부모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자녀가 충분히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제 품에 안고 보듬고자 애쓴다.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은 가정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하다. 반면 직장생활은 냉혹 그 자체다. 일을 배울 수 있을진 모르나 결정적인 업무는 스스로 터득해야만 한다. 생존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노하우를 조건 없이 타인과 공유하기란 쉽지가 않다.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지가 못하다. 실수가 쌓임에 따라 한 사람의 조직 내에서의 가치는 하락한다. 가업을 이은 젊은이들은 그런 점에서 천예의 상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은 게 부모의 일이었을 그들이다. 여느 분야보다도 친근감을 느끼는 분야였지만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한다면 멀리하는 편이 옳다. 부모세대 역시 제 자녀가 이왕이면 정장 차림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는 화이트칼라가 되길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전 없는 직장생활보다는 부모와 함께 부대끼는 편을 택했다. 처음부터 확신에 찬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시작은 달랐지만 모두가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표했다. 직업에 있어 경제적인 게 모든 영역을 지배하지는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가 걷지 않는 길을 걷고 있으며, 제 부모가 평생에 걸쳐 일궈 온 것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뿌듯함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대장장이, 시계수리공, 떡 기능인, 두석장. 대부분은 뛰어난 손재주와 감각을 요하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행처럼 번져나간 텃밭일 역시 업으로 삼으면 적잖은 고생을 요한다. 장을 떠돌며 물건을 팔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더더욱 고될 것이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몸을 움직여 하는 일들이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를 등한시했던가를 묻고 팠다. 모두가 꺼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그들은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벌이는 시원치 않은 듯했다. 건축경기가 침체되면서 대장장이의 일감은 확 줄었다. 전통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은 가업을 잇고자 결심한 젊은이의 손을 심심케 만들었다. 그나마 부모와 함께 떡을 만드는 떡집 자매는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했다. 젊은이 특유의 인터넷 감각을 백분 활용해 블로그를 운영하며 끊임없이 소통을 한 덕인데, 당장 기술을 물려받을 젊은이의 존재가 아쉬운 다른 장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 분명했다.
기술은 평생 직장을 낳는다. 비록 사회가 앓아주지 않고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그들은 남들과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은 끝에 제 부모의 뒤를 밟기 시작한 이들이 부러웠다. 돈 외적인 것을 잣대 삼아 누군가를 평가해보긴 진정 오랜만인 듯했다.
일터에서 만난 부모의 삶에서 꿈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색을 덧입혀 가업을 잇는 청년들의 생생한 이야기!
저자들은 의사나 법조인, 외교관 등 부의 대물림이 아닌 진정한 가업의 사례들을 찾아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국 곳곳을 다녔다. 서울, 충주, 대구, 통영, 부산, 구례를 오가며 대장장이, 시계수리공, 오일장 장돌림, 농부, 떡 기능인, 두석장 등 다양한 직업과 사연을 갖고 있는 가업을 잇는 청년들과 가족의 다채로운 삶을 만나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많은 청년들이 대기업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려 가는 와중에도, 자기만의 소신으로 다른 길을 걷는 청년들이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평생 곁에서 지켜보아 왔던 부모의 업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고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젊은이들이다.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 몸담고 있는 일들은 사실 흔히 이야기하는 ‘인기직업’은 아니다. 보통의 청년들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조금은 힘든 일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확신은 그 누구보다 크고 단단하다. 일을 배우는 어려움도 있지만 즐거움이 더 크다. 이 같은 남다른 청년들의 삶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삶은 순간의 큰 깨달음으로 인한 방향 전환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소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발견, 감동이 쌓여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다.
가업을 잇는 청년들 은 이처럼 다양한 직종에서 땀 흘리고 있는 청년들의 도전을 통해 다른 삶, 다른 꿈의 가능성과 가치,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 새로운 모험보다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일을 선택하려는 요즘 청년들에게 더 넓은 시야와 깨달음을 전해 줄 것이다.
Prologue
땀 흘려 일하는 부모의 뒷모습, 그 속에서 발견한 청년의 미래
서울. 천호. 대장장이. 아버지. 강영기 아들. 강단호
100년 대장간을 꿈꾸는 강남의 대장장이
대구. 용산. 시계수리공. 아버지. 이희영 아들. 이윤호. 이인호
대를 잇는 대한민국 시계 명장의 품격
충청북도. 충주. 장돌림. 어머니. 임경옥 아버지. 소창수 아들. 소성현
시골 장터에서 삶을 배우고 꿈을 키운 족발 청년 삼 형제
전라남도. 구례. 농부. 아버지. 홍순영 딸. 홍진주 아들. 홍기표
건강한 가족이 키워내는 건강한 먹거리
서울. 송파. 떡장수. 아버지. 김순배 어머니. 전성례 딸. 김진희 김지연
우리 맛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스무 살 떡집 자매
경상남도. 통영. 두석장. 아버지. 김극천 아들. 김진환
조선시대부터 5대를 잇는 가업, 통영의 두석장 가족
Epilogue
사랑하고 존경하기에 싸우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 부모
-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고서점’ 양수성 대표에게 듣는 가업을 잇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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