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28권에도 그해 5월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구두닦이 유명진이 / 곤봉 맞고 / 한쪽 귀에서 피가’ 흐르고 ‘대검 맞고 / 옆구리가 뚫려 피를 쏟’’(「5월 20일」)는다든지, 계엄군에 쫓겨 살려달라는 학생을 안방 벽장에 밀어 넣고 눈 딱 감고 누었다가 ‘세대주도 / 세대주 마누라도 / 열네살 아이도 / 열 살 아이도 / 곤봉 맞고 군홧발에 마구 차’(「그날밤」)이다가 끝내 세대주 신정남과 마누라가 피 뿜고 죽는다든지, ‘쉰살 아버지 고생 덜어드린다고 / 광주로 와 / 식모살이 시작’하여 ‘열네살부터 / 밥하고 / 빨래하고 / 빨래 다’리다가 장 보러 나가 그 길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아악! 큰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조덕례」)진다든지 피가 낭자하다. ‘일곱살 빨갱이로 / 뻗어버’ (「이창현」)리기도 하였다.
피비린내는 한결같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한테서 났다. 그것은 싸움의 한복판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도청 수습위원도 슬슬 빠져나갔다 / 지진에 앞서 새들이 떠났다 / 쥐들이 떠났다 / 구렁이도 슬슬 담 넘어 떠났다’. 그리하여 ‘남은 먹물은 윤상원뿐 / 고교생들 내보냈다 / 너 집으로 가거라 / 너 어머니한테 가거라 / 남은 놈들 / 넝마주이 / 막일꾼 / 구두닦이들뿐’’(「죽음의 행진」) . ‘시 외곽 순찰 마치고 돌아온 갱생원 시민군’ 같은 경우는 ‘수습위에 맞섰다 핏발 섰다 / 선생들이야 갈 데 있지만 / 우리는 갈 데 없소 / 여기서 싸우다 여기서 죽겠소 / 수류탄 / M16 자동소총 / 대검 번쩍 들’’(「무등갱생원생」)고 공수부대 포위선을 뚫고 나가다 죽었다. 안타깝게 죽어간 젊고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없는 넋들.
시신이라도 찾으면 다행이었다. 실상 이번 시집에는 행방불명된 이들 사연이 압도한다. ‘행방불명 신고자 2천7백여명 중 / 1천8백31명 피해보상을 받을 때 / 그런 대상이었을’(「김성기」) 죽음 죽음들. ‘외손자 돌날도 까먹은 / 이 외할미 / 어따 쓴당가 하고 / 외손자 줄 장난감 사러 나갔다가 / 얼루기 공수부대 총 맞아 죽었는지 / 곤봉 맞아 죽었는지 / 열흘 지나도 / 보름 지나도 / 감감무소식’인 마흔여섯살 농투성이 마누라(「한강례」), ‘계엄군 후퇴하다가 / 마구 갈겨대는 총에 / 어머니 등짝의 어린 미숙이가 맞’아 ‘기절 실신한 / 네 어머니 정신차려보니’ 피범벅 주검이 사라진 열 살짜리 뇌성마비 미숙이 ’(「문미숙」) 같은 행불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해 5월 행방불명된 자식 주검을 끝내 찾아낸 어머니의 사연은 가슴을 친다. ‘행방불명된 호영이 / 찾아나선 / 호영이 어머니 이근례 여사 / 억척으로 / 못난 영감 위하고 / 억척으로 다섯 놈들 길러낸 어머니 / 콩나물 여섯 동이 물 주어 길어낸 선하품 어머니’. 80년대 90년대 내내 갖은 핍박에 맞서 5ㆍ18 학살자 처벌 외치는 싸움판에서 억척으로 싸우다 ‘기어이 / 암매장터에서 나온 / 무연고 주검 11명 유골 검시 / 내 자식 호영이 유골 찾아내고 야 만 어머니 // 25년 만에 / 아들 유골 장사 지내고야 만 앙가슴 어머니’(「이근례 여사」). 평범한 어머니에서 투사가 되고 시대의 진실마저 드러낸 사례다. 실상 그해 5월은 이렇게 가난하고 힘없고 못 배웠으나 가슴만은 뜨거운 사람들의 위대한 역사였다. 고급 공무원마저 한편으로 만드는.
구용상
광주시장 발령 이래
소비뿐인 살림
가난뿐인 살림 벗어나려고
밤낮으로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던 중
5월 광주 한복판에 섰다
혓바닥 닳고
구두 바닥 닳았다
시민군 총기 6천 3백 65정
어렵사리 회수
각계 인사 청하여
수습위 결성
시 자체로 사태 수습
시 금고 텅 비어
양곡도매상한테
3천만원 빌려
시민 6천여 세대
생계비 5천원씩 조달
계엄군 작전 뒤
시체 수습
시설 파손 복구
부상자 치료
환경정비 등
24시간 뛰어다녔다 눈 충혈이었다
5월
그런 광주들
5월 27일 계엄군 들이닥쳐
다 망쳐놓았다
5월 31일 시장 면직
내무부 본부 대기발령
이임사
본인은 가장 존경받을 만한 시민의
시장이라는 사실을
최고의 영예로 알고 떠납니다
공무원 구용상
그는 마음속에서 오래 광주시민 편이었다
세계적인 시인 고은의 만인보 가 전30권(총 작품수 4001편)으로 완간되었다. 1980년 육군교도소에 갇혀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 것, 대미를 장식하는 27~30권은 주로 5·18 광주항쟁으로 채워졌다.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Robert Hass)이라 평가받는 만인보 는 말 그대로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봇물처럼 터져나온 ‘사람들에 관한 노래’가 대하(大河)를 이루어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파도소리에 우리는 경탄할 수밖에 없다. ‘빠리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발자끄에 빗대어 말하자면 가히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이를 만하다. 시인이 선사해준 ‘세상의 삶들, 희로애락들, 세상의 온갖 사연들, 세상의 죽음들’에 귀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의 탄생과 완성의 순간에 동참하게 된다.
영우 고조할머니 생신날
정명귀
공민영의 낮거리
정경채
사미 현해
장광식
박승방
임옥환
박중빈
임소례
문선명
이철우
유영준
이창현
소녀 소희
백씨
이진현
서평양경찰서장
이정길
상민
이상복
달밤
이기환
어느 할아버지의 무덤
유재성
송지영
유재성 아버지 어머니
이후원
양태열
청맹
양민석
석탈해
안운재
유리왕
신양균
퇴고 12년
송환철
우왕후
5월 20일
박철웅의 아들
도망
권필
택시의 날
유영 후예
택시운전사 홍사익
미내
두 친구
이강회
비구니 선화자
춤
탐라 김익강
눈깔 하나 빠졌다
독거
이명학
박석윤
그날밤
이주승
김성민
강부장
상무대 헌병 공창욱
천손이 할멈
박지관
백운선생
옥중결혼
합방의 밤
김현장의 한시
이문식당
한 넝마주이
현재묵
죽음의 행진
내 나무 노래
돼지와 개들
작은 시습
무등갱생원생
김유남
앰프
불탄 시체
두 부자댁
최종구
아들 사형제
그의 가계
한라산
채수길
해금의 밤
조덕례
영순이
정인채
김학성 어머니
정복남
여인국 선화아기
한강례
조선 노론
변오연
을병이 팔자
박형률 삼형제
설계두
박현숙
김우진 전집
박용제
송병준
박규현
현영섭
박갑용
박남규
문미숙
박춘금
문성옥
밤중
남영임
이경선
김희수
이갑성
김재영
김형극
김인수
유만수
김용석
서상한
그 형제
두 사람
김연임
보름달
김성기
환장암 스님
김남석의 넋
광대
김기운
옥여
여씨 울음
기운이 할머니
막내고모의 곡(哭)
김광복의 어머니
이날치
경순이
성현
권호영
40년
이근례 여사
거지잔치
변승업
고재덕
손금순
충무공
조아라
순이
작전회의
안선재
구용상
홍조난옥의 생일
전옥주
청전
다시 전옥주
김신용
방장 법전
막쇠 팔자
자개공장
수중열반(水中涅槃)
아지랑이
점
삼태기스님
김종만
5월 27일 아침
청화선사
세작
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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